본문 바로가기
세상을 보는 시선

도시는 점점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공간이 된다

by BeStOnE:) 2025. 8. 8.
반응형

도시는 점점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공간이 된다

- 8월의 열기 속에서

 

올여름도 어김없다.
하지만 ‘어김없다’는 말조차 무력하다.
30도를 넘어 36도, 38도까지 찍는 온도.
기상청은 매일같이 “폭염 경보”를 발령하고, 뉴스는 기후 위기를 반복한다.
도심은 ‘그늘이 사라진 지옥’이 되었고,
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이동을 할 때면, 수업이 없는 방학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캠퍼스에 오래 머물지 않아도 되는 건 이 계절에 유일한 위로다.
하지만 동시에 묘한 씁쓸함도 든다.
‘이렇게 덥다면 수업 때 학생들이 집중이나 할 수 있을까?’
‘환기와 에어컨 중 뭘 선택해야 하나?’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누군가가 나오면 어떡하지?’
그 어느 때보다 “디자인된 공간”이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구조라는 걸 절감한다.

 

공간도, 시스템도 결국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요즘의 도시는 그 믿음을 배신한다.
지열에 달궈진 인도, 쉼터 없는 횡단보도,
폭염에도 멈추지 않는 시멘트 공사장.
사람보다 건축이, 효율이, 기계가 먼저다.
이건 디자인의 실패다.
그리고 이 실패는 기후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잔인하게 드러난다.

 

며칠 전, 버스를 기다리다 말 그대로 ‘녹을 뻔’ 했다.
정류장엔 그늘막이 있어도 땀이 비오듯하고 비닐 광고판이 뙤약볕에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순간 눈앞이 핑 돌았다.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체감온도 39도’.
그 순간 떠오른 단어는 “도시는 인간이 살 공간이 아니다”였다.

‘디자인’은 예쁘고 편한 것만을 만드는 게 아니다.
삶의 조건이 변하면,
그에 맞는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진짜 디자인이다.
지금 우리 도시에는, 그리고 건물에는
폭염을 견디기 위한 ‘설계적 사고’가 너무나 부족하다.

 

시민의 건강을 우선한 그늘막보다,
광고비를 벌 수 있는 노출형 간판이 더 많이 설치된다.
이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소비를 위한 동선만 가득한 쇼핑몰.
폭염 속에서 가장 쾌적한 곳이 ‘백화점’이라는 사실.
이건 삶의 디자인이 아니라, 소비의 구조다.

 

이쯤에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디자인 교육을 하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시각적으로 예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결과물을
요구한 적은 있어도,
‘기후에 견딜 수 있는 의자’,
‘노약자와 반려동물이 함께 쉴 수 있는 공공 그늘 디자인’
같은 문제를 과제로 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기후 위기는 이미 콘텐츠가 아니다.
뉴스로 소비되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몸과 감각이 가장 먼저 체감하는 현실이다.

나는 수업 안에서 이 감각을 끌어내야 한다.
학생들이 ‘덥다’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수업의 재료로 삼아야 한다.
디자인은 공감에서 시작하니까.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우리 사회 시스템의 한계를 낱낱이 드러내는 리트머스다.
나는 이 도시에서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이 소외되고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낀다.

에어컨이 있는 집에 들어가면 괜찮다고?
아니다.
실내는 오히려 냉방병과 피부 트러블을 유발하고,
전기요금은 치솟는다.
더우면 그만큼 ‘돈이 더 드는 삶’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위에 취약하다.
이건 곧 기후 불평등이다.
날씨는 평등해도, 대응 능력은 계급에 따라 달라지니까.

 

나는 ‘도시의 온도’가 결국 ‘도시의 품격’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 품격은 건물의 높이나, 브랜드숍의 개수가 아니라
폭염에 지친 노인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아이들이 땀을 흘리지 않고 건너갈 수 있는 횡단보도가 있는가?
같은 디테일로 측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기준에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폭염 속에서 나는 묻는다.
“우리는 정말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들고 있는가?”
내가 수업에서, 콘텐츠에서, 글에서 이 질문을 더 자주 던져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언젠가 ‘더워서 나가지 못하는 도시’에서 ‘혼자 버티는 법’만 배우게 될지도 모르니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