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본 교수, 가까이서 본 사람
멀리서 보면 직선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휘어진 선. 그리고, 뮐러-라이어 착시에서 화살표 방향에 따라 같은 길이의 선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우리 눈은 종종 실제와 다른 것을 본다. 체스판 위 그림자 착시에서 밝은 회색과 어두운 회색이 실제로는 같은 색인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존재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있다.
이런 시각적 착시는 비단 그림이나 도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지위와 권위에도 똑같은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특히 '교수'라는 직함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권위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안녕하세요, 시각디자인과 교수님이시군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일관적이다. 고개가 살짝 숙여지고, 말투가 정중해진다. '교수'라는 두 글자가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아우라의 힘이다. 지식인, 전문가, 권위자라는 이미지가 자동으로 투영된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은 더욱 극적이다. 학생들이 일제히 조용해지고, 시선이 집중된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분명하다. 디자인의 세계를 안내해줄 전문가,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어줄 멘토, 그들의 미래를 밝혀줄 등대 같은 존재 말이다.
이런 권위적 이미지는 멀리서 보았을 때 달이 크게 보이는 착시와 닮아 있다. 거리가 있을 때는 위풍당당하고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거리감을 고려하면 그 크기는 전혀 다르다. 교수의 권위도 마찬가지로 과장되어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착시가 풀리는 순간이 온다.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 문을 닫는 그 순간부터 겸임교수의 진짜 일상이 시작된다.
다음 주 강의를 위해 새벽까지 자료를 찾고 정리한다. 학생들이 던질 수 있는 예상 질문들을 미리 정리하고,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공부한다. 연구 지원이나 조교 도움 없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강의 자료 준비부터 과제 채점, 학생 상담까지 개인 시간과 비용으로 충당한다.
저번에도 이야기를 썼지만 무거운 가방을 들고 이동하는 시간이 일상이다. 학교마다 다른 시설, 다른 분위기에 매번 적응해야 하며, 강의실 컴퓨터가 말을 안 들을 때면 혼자서 해결해야 하고, 프로젝터가 안 켜지면 당황하며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불안정함이다. 매 학기 강의 배정이 불확실하고, 방학 기간에는 수입이 끊긴다. 그래서 디자인 프로젝트나 프리랜서 작업을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명함에는 '교수'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대학을 오가는 강의 전문 프리랜서에 가깝다.
가까이 다가오면 달이 더 이상 크게 보이지 않듯, 교수라는 권위도 실제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권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한 학생의 포트폴리오 작업을 보고 있었다. 기술적 완성도는 아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 가능성을 설명하며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몇 주 후, 그 학생이 눈을 반짝이며 개선된 작품을 가져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진짜 권위는 직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그 순간에 생겨난다는 것을.
또 다른 학생은 취업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며 상담을 요청했다. "디자인에서 만큼은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저는 실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교수님도 너의 나이대에 비슷한 고민이 있었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새로운 것을 계속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어요." 오히려 그 학생은 위로받는 표정을 지었다.
권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진정성 있게 만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할 때도 있지만, "함께 찾아볼까요?"라고 말하는 순간이 오히려 더 깊은 신뢰를 만들어냈다.
매 수업을 위한 철저한 준비, 학생들의 작업에 대한 성실한 피드백,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배우려는 자세. 이런 성실함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진짜 권위였다. 불안정한 고용 상황이 오히려 더 간절하게 학생들을 대하게 만들었고, 그 간절함이 더 좋은 교육으로 이어졌다.
착시는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차이를 깨닫게 해준다. 같은 회색이 주변 색깔에 따라 다르게 보이듯, 권위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인식된다.
교수라는 타이틀이 만들어내는 권위는 어쩌면 시각적 착시와 같다. 멀리서 보면 절대적이고 완전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더 진실한 것들이 발견된다.
매일매일의 성실한 준비, 학생들과 나누는 솔직한 대화, 함께 성장해가는 과정. 이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쌓이는 경험들이 만들어내는 권위는 착시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진짜 권위다.
겉모습의 권위가 아닌 관계 속의 권위. 착시는 눈을 속이지만, 진짜 권위는 삶을 속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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